나의 윤리
어딘가에 보내야 할 글이 있어서 예술과 윤리에 대해 글을 쓰다가 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제도를 바꾸는 혁명에 큰 관심을 갖고 여기에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이 생각났다. 나는 그런 자리가 불편하면서도 왜 결국 또 앞에 서서 주장하게 되었던 것일까.
아무래도 나는 ‘억울함’, ‘부당함’, ‘불공정함’에 약한 것 같다. 내가 억울하고 괴로운 상황에 처하는 것은 당연히 싫다. 그리고 나와 무관한 사람일지라도 그사람이 부당한 폭력을 당하는 것도 싫고, 부당한 비난을 당하는 것도 못 견디겠다.
내게 이 ‘부당한 일’의 범주는 넓은 편이다. 예를 들면 내 대학교 주변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오는 로데오 거리가 있었는데 커플들 사이에서 생기는 데이트 폭력과 관련된 사건이 유독 잦았다. 그리고 보통 미대생이 그러하듯 나는 학교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꽤 늦게 귀가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늦은 밤에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보게 되었다. 술에 취한 남자가 여자를 잡고 놔주지 않는다든지 때리는 것을 보면 내 시선이 그 장면에 멈춘다.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몰라도 ‘상대적인 약자를 때리면 안 되지, 말려야겠다, 저 여자를 보호해야겠다. 일단 경찰을 부르는 게 제일 좋은 것을 아는데 경찰이 이 장소에 오기까지 약 10분이 넘게 걸릴 것이고 그때까지 저 여성분은 어떻게 버텨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도저히 이 상황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일단 내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껴서 그들의 물리적인 거리를 막고 상황을 중재하다 보면 경찰이 도착하겠지라는 마음으로 나서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별별 꼴을 다 본다. 말리다가 나도 얻어맞을 때가 있었고 경찰이 와도 이건 사랑 싸움이라고 판단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래도 위험에 처한 사람을, 특히 무방비한 폭력에 당하는 피해자를 모르는 척하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이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고 최근 몇 년간은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없다. 저 때는 내가 대외 활동을 많이 하던 시기였다. 지금은 내가 외출하는 일도 적고, 사람들이 많은 밤거리를 다니는 일도 거의 없어서 이런 상황에 처한 적이 없다.
나는 내 과거의 행동이 순전히 이타심에 의해 작동된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저 때는 스스로를 보호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또한 내가 물리적인 고통을 못 느끼면서 자기 보호 본능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보다 타인의 고통에게 더 무게를 싣고 상황에 개입했었다.
혹시나 내가 다치더라도 그 누구도 나를 위해 울어주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도 컸었다. 이제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 사람들이 내가 크게 다쳤을 때 슬퍼할 것을 생각하면 벌써 내 마음이 괴롭다. 이제는 타인의 상황에 필요 이상 이입해서 위험한 상황에 무조건적으로 뛰어들고 싶지 않다. 그게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 같다. 입장을 바꿔서 반대로 생각했을 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타인의 고통보다는 자신의 안전을 더 우선시 했으면 좋겠다. 나한테 중요한 것은 내 사람의 안전이지 다른 외부인이 아니다. 그가 무리해서 다치는 것을 생각하면 상상만 해도 속상하다. 그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 함께'라는 것은 이제 '내'가 곧 '너'고 '너'가 곧 '나'인 '우리'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아끼는게 상대를 아끼는 것이다. 내가 그를 아낀다면 나도 아껴야 한다. 그게 '우리'라는 운명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고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이건 아마 내 유년기때의 마음도 크게 차지하는 것 같다. 어렸을 적 당시 나는 누군가의 도움이 너무나 절실했고, 지금도 가끔 그때 누군가가 날 도와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린 나는 지금의 어른이 되었고 그래서 더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 안의 어린 아이를 외면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다. 나는 그 애를 최대한 보듬고 안아 주고 싶은데. 내면 아이를 껴안고 사랑해주다보면 어느새 그아이의 상처도 덜해지겠지. 실제로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여하튼 이런 상황에 대처해야 할 자세한 매뉴얼이 생겼으면 좋겠다. 내가 비겁해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나를 부러트리지 않는 올바른 노력을 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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