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3일 일기 (지옥과 대면)

 여러 선생님들께서 글로 써보라고 설득하셨고 마침 8월초가 되면 나도 일 하나가 끝난 시점이기 때문에 글을 시작해보기로 다짐했다. 내용이 다소 거칠고 누군가에겐 불쾌한 주제일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그리고 이미 감정은 지나가고 사실만 남아서 그때 그랬었다 이정도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7번째 문단까지 전혀 힘들게 쓰지 않았다. 

  1.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여자로 태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여자로 키워지게 된다. 그런데 나는 조금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여자도 남자도 아닌 것으로 자랐다. 요컨대 내게 ‘여자는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제한이 페미니즘을 배우기 전부터 없었다. 다름 아닌 생부 때문이었는데 그는 무척이나 야만적인 사람이었다. 난 지금도 그 사람의 진짜 직업이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조용덕에게는 야차가 일이었던 것 같다. 대학생 때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라는 영화를 봤었는데 헉 이거 조용덕 얘기잖아 하고 깜짝 놀랐었다. 친구도 너네 아버지는 김기덕 감독의 살아있는 페르소나라고 했었다. 그만큼 조용덕은 굉장히 폭력적이었고 미쳐있었다. 이쯤 되면 가부장 제도의 살아있는 악귀여서 남성 스테레오적인 시각을 지닐 만도 한데 그는 적당히 돈 게 아니라 180도쯤 돌은 사람이기 때문에 자식이 맹견이 되길 바랐다. 따라서 나는 유년시절부터 ‘조용덕 딸은 어디서 맞고 들어오면 안 된다’를 귀에 딱지 앉도록 들었다. 담력을 길러야 한다며 날 던졌었고 철물점에서 몇 매다를 끊어서 사람 어디를 때리면 즉사하는지, 시야가 가려졌을 때 어디서 주먹이 날라오는지를 파악해야 했고, 철봉에 일정 시간 이상 매달리지 못하면 그날 밥은 없다- 이런 식으로 배웠다. '네가 남자와 싸울 때 이기겠다는 생각을 하면 반드시 지고, 오늘 쟤를 죽일 거라고 마음먹어야 이기는 것'이라고 주입시킨 것도 조용덕이었다. 아무리 체구가 작은 년이어도 눈깔이 뒤집힌 년을 이길 수 없는 노릇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조용덕 덕분인지 타고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난 지금도 민첩성이나 담력, 지구력은 좋다. 그리고 조용덕의 우스운 점은 이뿐만이 아니라 운동만 잘하면 똘마니밖에 안되고 문무를 겸비해야 우수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내 성적에도 꽤나 신경썼다는 점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의문을 제기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입을 열면 주먹부터 날라오니까 적당히 알아듣는 척을 했었다. 돌이켜보면 그 사람은 군부에서 일하지 못했던 것을 내게 풀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는 북한에서 온 할아버지 때문에 연좌제로 직업 군인이 되지 못했다고 했는데 사실관계가 어떻든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상명하복이란 말을 그렇게 좋아하는 조용덕이지만 그건 자기가 누군가를 부릴 때나 가능한 것이고 윗사람 지시를 그대로 따를 양반이 아니었다. 그 사람 기질상 분명히 일을 쳤을 거고 영창에 가는 건 가벼울 수준이었을 것이다. 어찌 됐든 조용덕은 사회에서 도태된 인간답게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몇 없는 약자를 쥐고 마음껏 주무르고 싶어 했다
  1. 폭력적인 사람이 폭력적인 짓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평소 행실에 해당되므로 그 사람만의 정상 범주라고 생각했다. 그런 조용덕이 정말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적이 다섯 번 있었다. 중학생 때 종합학원 빼먹은 것을 조용덕에게 들키고 쇠 냄비로 맞아서 기절했었는데 눈을 뜨니까 집에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저녁을 챙겨 먹고 방에 들어가서 잤는데 조용덕이 새벽에 내방에 들어와서 세 시간동안 무릎을 꿇게 하고 네 잘못이 뭔지 종이에 적으라고 했다. 그리고 체벌이 끝나자 조용덕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울었다. 악어의 눈물 같아서 소름끼쳤다. 난 지금도 무릎 꿇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두 번째는 조용덕이 날 마트에 데려가서 물건을 훔쳐보라고 했던 날이었다. 나는 들킬 거라고, 못한다고 계속 망설였고 그는 처음에는 어린아이 달래듯이 괜찮을 거라고 구슬리다가 말이 먹히지 않자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 돌아가면 네 다리를 부서뜨릴 거라고 조용히 읊조렸다. 진열대 위의 물건들이 나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 같았다. 점원에게 들킬까 봐 무척 겁이 났지만 그래도 더 무서운 것은 조용덕이었기 때문에 마트 몇 바퀴를 돌다가 모나미펜 하나를 잠바 주머니에 넣고 밖에 나왔다. 조용덕은 생필품을 먼저 결제하고 밖에 나와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래도 조윤아가 깡은 있다면서 기분 좋게 담배를 피웠고 네게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그날 kfc 치킨 한 통을 안고 귀가했다. 세번째는 스무 살 때였다. 조용덕에게 반수하고 있던 것을 들켰었는데 그는 정말 도깨비처럼 화를 냈었다. 아, 도깨비보다는 야차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그때 그 불그죽죽한 얼굴에는 야차라는 말이 알맞다. 조용덕은 눈이 시뻘겋게 돌아가서 손에 뭐든 잡아서 던졌고 그래도 화가 안 풀렸었는지 방 안에 있던 캔버스 틀 모서리로 내 얼굴을 가격했다. 관자놀이 부분이 길게 찢어져서 피가 얼굴을 타고 흐르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어깨까지 붉게 푹 젖었다. 그쯤부터는 나도 되려 공포심이 사라져서 그냥 지금 날 죽이라고, 왜 조윤지는 그렇게 예뻐하면서 난 미워하지 못해서 안달이냐고 악을 쓰면서 발광했다. 조용덕은 가만히 서서 날 보고 있다가 거실에 있던 생모에게 쟤 얼굴 찢어졌으니까 응급실에 데려가라고 했다. 야밤에 국립의료원에 가서 삼십바늘을 꿰맸다. 네 번째는 어느 날 이 인간이 술을 마시고 들어왔을 때 평소처럼 도시가스에 불을 붙인다, 다 죽일 거라고 염병을 떨었고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멱살을 잡았다. 그 사람이 술기운에 넘어지고, 역시 이래야 내 딸이라면서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모골이 송연해졌다. 어차피 이해할 마음도 없었지만 정상적인 사고 회로로는 절대 저 사람을 알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 다섯 번째는.. 조용덕은 알콜중독에 환각을 봤었다.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내 방문부터 두들겼기 때문에 그 사람이 늦게까지 집에 안들어온다 싶으면 방 문고리를 잠갔다. 2010년 그날 조용덕은 내 방문을 거칠게 두들겼고 나는 저 야차가 저러다 말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날따라 집요하게 굴었다. 얼마 안가서 조용덕의 주먹질로 방문에 구멍이 뚫렸고 나는 그 구멍을 숨죽이고 노려봤다. 다음에 있었던 일은 적고 싶지 않다. 다음날 생모는 모르는 척 했었고 조용덕도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나는 여기서 더 지내면 내가 죽던지 혹은 내가 조용덕을 죽이던지 둘 중 하나일 것임을 직감했다. 내내 사선에서 살던 사람에게 죽거나 죽이거나 이 문장은 위화감이 없었다. 어차피 내게 산다는 것은 서슬 퍼런 칼날 위에서 서있는 것이었다. 현대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안다. 혹자는 경찰에 신고하지 그랬냐고 하지만 안 부른게 아니었다. 늘 가벼운 훈방조치로 끝났고 언제나 조용덕의 보복이 이어졌으며 날 흠씬 두들긴 후에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며 침을 뱉는 것으로 일이 끝났다. 법으로 안전하게 응징할 수 없고 개죽음이 싫다면 조용덕에게 배운 방법으로 조용덕 멱을 따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도 사람이어서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아무리 미워도 혈연 지간인 아빠한테 그러면 안 된다 이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혈연지간에 일어나면 안될 일을 먼저 저지른 것이 조용덕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이니까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마지막 규칙 내지는 최후의 선 같은 것이었다. 이게 부서지면 나도 인두겁을 쓴 짐승이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내가 지닌 몇몇 자질들이 제법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용덕을 죽여서 교도소에 가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었다. 환경이 타고나지 못했어도 내 재능에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날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운명을 보니까 나 자신의 운명을 아주 자세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대략적으로는 알았다. 이런 몇 가지 조건들을 저울 위에 두고 따져봤을 때 내 미래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처음 십 년은 너무 돈이 없어서 허덕였지만 내가 그당시에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자 최선이었다.
  1. 조용덕 피가 내게도 흐른다. 한대 맞으면 백대를 돌려줘야 하는 것, 지고는 못 사는 것, 억울한 일을 겪으면 언젠가 반드시 찍어눌러야 직성이 풀리는 것, 와신상담하는 독사같은 기질 등등.. 어렸을적 속으로 조용덕을 품위 없는 새끼라고 비웃으며 얼마나 우습게 여겼지 모른다. 하지만 그 피가 어디 안 가고 내 안에서도 들끓고 있었다. 내 안에도 야차가 있었다. 바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 안에서 선이라는 것이 강한 신념으로, 중심으로 자리 잡았지만 힘으로 사람을 굴복시키려는 이면도 존재한다. 그만큼 내 안에서 선악이 뚜렷하게 대비되어 있다. 어른에게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는 아이들, 주류가 비주류를 수호하는 상식적인 세계, 평등, 수평적인 사회 구조를 지향하는 마음. 그리고 무엇이든 나를 방해하거나 거슬리게 하는 것은 그들이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을 만들어서 빠트리려는 마음도 함께 공존한다. 불합리한 일을 겪는 사람이 내가 아닌 타인이어도 먼저 나서서 돕는 게 당연한 것이고 이치에 안 맞는 일이 있을 땐 적극적으로 고쳐야한다. 그런데 상식과 비상식을 갈랐을 때 비상식 쪽에 서있는 사람이 너무 안하무인으로 굴며 비합리적으로 우길 때, 그 때부터 저 새끼 목을 확 비틀어버릴까 고민하는 내 양면성이 저 밑바닥에서 도사리고 있다. 내 본성 중 하나가 교활한 방식으로 누군가의 약점을 찾으려고 할 때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받았으면 돌려줘야하니까 당해도 싸다고 생각했다.
  1. 그래도 평화를, 온건한 길을 걷고 싶다.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증오의 연쇄를 끊고 싶다. 나는 지난 시간동안 가정에서 학대받았던 피해자들의 치료에 대해 찾아보고 연구했다. 심리 논문을 찾아서 읽고 센터에서 상담받으면서 ‘옳은 방식’으로 사는 방법을 모으고 추려냈다. 결국 나를 다스리고 주변에 좋은 사람을 두어 따뜻한 감정의 교류를 느끼고 긍정을 믿는 방법이었다. 너무 뻔한 방식이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나는 끊임없이 수련하며 정진하고 검열하는 인생을 살기로 했다. 방심하는 순간 내 안의 폭력성이 수면 위로 올라와서 옳지 못한 방식으로 사람을 조를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대신 어두운 면을 아예 없앨 수는 없으니 일종의 협상을 했다. 내게 이런 그림자가 생긴 원인과 그간의 고생에 대해서도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으니 분노라는 감정을 무시하지 않으려고 했다. 또한 나는 이유없이 공격을 하는 사람은 아니니 내 안의 그림자가 올라오면 화가 날만하다고 다독인다. 어차피 화가 나는 마음을 억눌러도 언젠가 그 마음이 고개를 들기 마련이고 그 때부터는 수습하기 어렵다. 그전에 미리 날 들여다보고 내 감정의 궤도에 대해 잘 파악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분노가 일만한 상황에 나를 너무 장기간 노출시키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를 더 좋은 곳에서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니다 싶을 때 빠르게 발을 뺄 것이다. 적어본 것중 아마 후자보다는 전자를 지키기가 쉬울 것이다. 타인과의 이해관계가 섞인 외부보다는 내부를 컨트롤하는게 조금 더 쉬우니까. 그래도 잘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1. 다년간 내 핸드폰 배경 화면은 ‘해야 함은 할 수 있음을 내포한다’ 타이포였다. 난 기본적으로 관조하는 사람이다. 뭐든 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인지 아닌 영역인지를 첨예하게 구분하는 편이고, 다각도로 분석하고 연구하여 객관화하는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 과정에서는 도피가 없다. 그래서 내가 될 깜냥인지 아닌지는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런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생겼을 때는 실은 그것을 이루는게 가능해서다. 그러니까 내가 하기로 마음 먹었다는 것은 이미 가능할 거라는 계산을 끝낸 후다. 할 수 있으니까 해야 한다, 해야 하니까 할 수 있다. 이 도돌이표는 지난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래도 일이 잘 안풀리고 계속 실패만 번복할 때는 이대로 영원히 잘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나는 패자일 뿐이라는 사고에 젖어서 더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싶다. 그럴 때는 낙관을 갖는 게 바보인 것처럼 느껴진다. 어차피 앞으로도 쭉 안될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에 매몰되어서 이대로 영원히 일어서지 않고 싶고 내가 나니까 앞으로도 잘 안될거야 라고 부정적인 기운을 잡고 놓아주고 싶지 않다. 절대로 희망을 갖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나 자신을 그렇게까지 부정해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내가 앞으로 잘 안풀릴 이성적인 근거는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명분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면서 납득이 되지 않는 확실한 근거도 없이 스스로를 부정했다. 그렇다면 나를 긍정하는 것도 근거없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부터는 이유없는 믿음을 갖고 싶다. 그간 믿음에는 반드시 증거가 필수 조건으로 붙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뭐든간에 납득이 가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믿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냥 존재하니까, 무조건적으로 그냥 잘 될거라고 믿는 것도 희망인 것 같다. 자연은 그저 존재하고, 태어난 모두에게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태어난게 아닌 것처럼 특별한 이유 없이도 믿을 수 있다. 내가 더 살아보기로 마음먹고 미래를 믿기로 한다면 더는 내가 원하는 미래로 도달할 거라는 다른 증거가 필요하지 않다. 그렇게 될 수 있으니까 자연스레 그런 마음을 품는 것처럼, 달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 모르게 당연하니까 믿는 거고 믿으니까 당연한 거다. 그리고 이제는 그냥 나에게 잘 될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기도 하다. 새로운 도돌이표는 이미 시작되었다. 지원이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행복해질 거라고 무조건적으로 믿는다. 이유도 없다. 그냥 근거 없이 믿는다. 나는 이런 지원이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나는 현실적인 증거가 없이는 어떤 것을 그대로 믿기 어려웠다. 그런데 때론 이런 근거 없는 믿음이 필요한 같다잘 될거야 윤아야. 
  1.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절대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외에도 수많은 갈래길이 있을 것이고 각자에게 잘맞는 방법이 다를 것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이 걸렸고 과거보다는 지금이 마음 편하다. 나는 좀처럼 심플하기 어려운 타입이고 복잡한 플롯의 디테일과 전체를 힘께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도피가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에(도피도 재주다. 정말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방법이 제일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방법을 찾을 수도 있겠지. 나아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할테니까. 이게 내가 삶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기도 하다. 삶의 주인은 나니까 이끌어가고 싶다. 31년간의 스토리 . 글로 쓰라고 권유한 선생님들에겐 공개하지 않고 비공개 계정에서 적당히 마무리할 예정이지만 쓰라고 하셨는지는 같다. 가장 폭력적인 것으로부터 의도치 않게 반대의 것이 탄생하고 그로 인해 생기는 존엄성과 충돌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존자의 기록은 결국 삶을 살아냈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그간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이 좀처럼 어려웠다. 자신을 좋아하면서도 격렬하게 싫어했고 몇몇 도드라지는 특징들에게 온갖 잣대를 들이대며 도려내고 싶어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싫었던 점까지 포용할 있을 같다. 그냥.. 스스로를 용서할 있을 같은 기분이 든다. 글로 적고보니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순간도 앞의 장애물로부터 도망친 적이 없었다. 힘든 순간마다 고통스러워 할지언정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도 굴복하지 않고 영혼이 가르치는 방향 그대로 걸어왔다는 점이 나를 기쁘게 했다. 이정도면 아수라장 안에서 아주 자랐다. 아니 생존해왔다. 실낙원에 있는 어느 구절처럼 ‘So hee with difficulty and labour hard Moved on: with difficulty and labour hee,(그리하여 그는 모진 곤란 수고 겪으며 앞으로 나아갔노라. 곤란 수고 겪으며 그는,). 그리고 다들 행복하게 살길!

-2021년 8월 13일 일기 (지옥과 대면)
오 다시 봐도 뜨거운 이야기다. 글에 몇번이나 야차가 등장하는거야? 하하.. 이 뜨거운 일기를 여기에 다시 올리는 이유는 너가 내게 마음을 열고 나를 받아들여서, 나는 이제 너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어서, 너가 내 상처를 더럽게 여기고 싫어하기 보다는 잘 견뎌왔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나 이렇게 아팠었다고 말하기 보다는 이게 내 지난 삶의 역사라고 말하고 싶어서, 이제 너 앞에 100% 인간 윤아가 있어서. 그리고 이제 새로운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