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껴안기1
1.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주로 방어하면서 살아간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나쁜 쪽으로 남의 이목을 끌지 않겠다는 일념이 강하다. 실수하지 않으려는 불안과 촘촘히 붙어 있는 불안은 틀린 결정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그래서 자기 불안이 있는 사람은 아예 결정 자체를 잘 내리지 못한다. 이해득실, 위험 요소와 가능성을 머리가 흔들릴 정도로 따지고 계산하느라 앞으로도 뒤로도 못 움직인다. 자신이 내린 판단을 도무지 신뢰하지 못한 탓도 있다. 자신이 내린 결론이 맞는지, 앞으로 다가올 결과를 올바르게 예측하긴 했는지 자신이 없다. 이렇듯 실수, 비판, 실패에 대한 불안은 판단력에 전방위적으로 제동을 건다. 특히 불안한 사람의 결정을 가로막는 가장 큰 난관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든 공격을 피하고 싶어서 선택하는 또 다른 수단은 완벽주의다. 완벽주의는 ‘완전무결’의 다른 표현이다. 완벽주의자는 하나도 빠짐없이 실수 없니 해냈는지에 집착한다. 불안을 가진 사람은 실수하면 공격당할 것이라는 모호한 불안에 사로잡혀 산다. 고로 무언가 완벽하게. 실행한다는 건 안전을 뜻한다. 다만 문제는 무엇이 어떻게 되어야 완전무결해지는가이다. 아니, 애초에 완전무결이라는 것이 있기나 하고, 완벽해지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완벽주의라는 해법은 처음부터 실패를 내포한다. 한술 더 떠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은 한 가지로만 만족하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완벽해지고 싶어 한다. 이들은 끝이 안 보일 만큼 아득하게 높은 기준을 세우고 그걸 쫓느라 항상 긴장해 있다.
2. 우리가 인생사를 되돌아볼 때 취하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스스로를 환경의 피해자로 보든가, 아니면 어디까지나 자신이 한 행동이니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고 보든가. 언뜻 보기엔 자기 책임 쪽이 더 도덕적으로 들린다. 실제로도 그런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무조건 자기 책임만 기준으로 삼다 보면 자책이 지나치게 늘어나고, 건설적인 가능성이 전무해 보인다. 스스로를 환경의 희생양으로 인식한다면 자신만 빼고 모든 사람에게 잘못을 돌릴 수 있다. 반면 모든 잘못이 자기에게 있다고 간주하면 이 관점 역시 지나치고 오류가 있다. 스스로를 오직 피해자로만 보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자신이 한 일중에서 수정할 것이 하나도 없으며 그 무엇도 변화시킬 수 없다. 내 인생에서 지금까지 얼마만큼 책임을 회피해왔는지 인정해야 바꿀 수 있는 것을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태도는 많은 불행을 겪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존감이 너무 약해서 책임을 수긍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 매우 큰 부담을 느낀다.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누구에게든 책임을 떠넘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산산이 부서질 것 같은 위기감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 많은 불행이 다 자기 책임이고 오로지 자신의 탓이라면 도무지 견디기 힘들다. 반면 자기 책임이 지나치면 자신의 인생에 비판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복기와 반성에 공을 들이는 유형이다. 다만 너무 가혹하게 자신을 몰아붙이고 자기 비하가 지나쳐 결국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비현실적인 피해의식이나 과장된 자기비판 모두 태만을 불러온다. 피해의식도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을 탓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다.
3.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최대한 현실에 입각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되, 자기 책임에 해당되는 부분은 물론이고 어찌할 수 없는 외적인 조건을 자세히 조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필요한 변화의 스위치를 작동시킬 수 있다.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현실적인 눈으로 판단한다.
*자신이 행하지 않았으며 책임이 없는 일들, 즉 유년기에 자신을 양육한 이들이 어떤 일을 했고 무슨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낸다.
*자신 혹은 마음속 내면아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수긍한다.
*자아상을 바꾼다.
*그것을 밑거름으로 새로운 결정을 내리고 실행한다.
4. 그냥 딱 한 걸음씩 만 생각하는 거야. 한 걸음을 걷고 나면 바로 그다음 한 걸음만 생각하면 돼. 실패가 두려워 아예 시작도 안한 것들이 있고, 타인에게 거부당할 것이 무서워서 나를 혼자만 둘 수 있는 고독안에 가뒀다. 나는 스스로를 억압했고 나 자신을 방기했었다. 또한 자기애의 결핍을 용인했었다. 왜곡된 자아상을 키우며 나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 안에 간직했던 내적 확신은 다름 아닌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라는 말이었고 그것이 과장된 자기비판을 갖고 왔다. 이 모든 통찰에 도달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고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을 대가로 치렀다. 그렇지만 새로운 인식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힘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힘을 길렀다. 마음속에 사는 겁먹고 불안한 아이를 찾아냈고, 이 아이가 크나큰 부담 탓에 지금껏 잘못된 선택을 해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동시에 자신의 건강하고 강한 면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습관도 길렀다. 지칠 줄 모르는 투지, 자신을 성찰할 줄 아는 힘, 따뜻함과 사랑을 추구하는 마음, 똑똑한 머리까지. 그리고 자신을 이해할수록 타인을 수용하는 일도 쉬워졌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많은 것을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좀 더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결정할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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