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아 사용 설명서 6

 9. 所願소원


 이번 생이 마지막 생이라는 것은 기나긴 윤회의 반복에서 벗어나 영혼이 소멸되여 영원히 쉴 수 있음를 뜻한다. 예전에는 이 윤회가 끝나길 너무나 기다려왔었다. 고통스러운 현생에 질렸기도 했고, 어렴풋이 기억나는 전생에서의 싸움, 전쟁이 너무 싫은데 여전히 이런 것들이 반복되는 세계가 혐오스러웠다. 역사는 반복되고 인간은 어리석어서 발전이 없고. 그래서 어서 영원한 휴식을 맞이하고 싶었고 영혼이 소멸되는 방법을 계속 찾아왔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게 삶이라면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작년까지도 그랬었다.

   

그런데 남자친구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되면서 살아감에 대한 열망이 생기고, 그에게 애틋함을 느낄수록 이번 생이 마지막이라는 것이 안타까워진다.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그래서 나는 현생만큼은 삶의 충만함을 느껴보고 싶다. 늘 항상 일찍 죽어왔어서 못해 본 것이 너무 많다. 결혼도 해보고, 우리들만의 유연한 규칙도 만들어보고, 가족 회의도 하고, 부부 생활을 하면서 소소한 즐거움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고 싶다. 남편과 같이 누워서 창문 밖을 바라보며 하늘이 예쁘다고 말한다던지 오후에 함께 홍차를 마신다던지 그런 따뜻한 순간을 누리고 싶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그보다 너무 일찍 죽지 않길 바란다. 남자친구가 나보다 타고난 수명이 길기도 하고, 내가 여태까지 고통스러운 삶을 아둥바둥 싸워오면서 건강을 너무 갉아먹었다. 나는 원래 주어진 수명만큼 살지도 못할텐데 그렇게 되면 남자친구가 너무 긴 세월동안 힘들까봐 걱정이다. 내가 지난 전생에서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그걸 남자친구가 겪는게 싫다. 그래서 내가 아기를 낳으면 나중에 홀로 남겨질 그가 그래도 자식이 있으니까 덜 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혼자 했지만. 뭐 이건 함께 얘기하면서 맞춰가야 할 사안이다. 

여튼 난 건강한 신부가 되고 싶다. 지금은 나도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까 주술사 일을 할 수 밖에 없지만 나중에 결혼하고 안정이 되면 다수를 상대로 영력를 소모하는 일을 그만둘 것이다. 그와 함께 살면서 최대한 오래토록 옆에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많은 것을 해주고 싶다. 그가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늘 웃을 수 있게 해주고 싶다. 그 사람이 웃는 것을 보면 내 목덜미가 간질 간질해지면서 마음이 따뜻한 온도로 뎁혀진다. 

내 소원은 그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