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클럽 비대면 인터뷰 2026년 4월 6일
1.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는 ‘혐오의 시대’라는 표현을 자주 듣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은 지금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했다고 느끼시나요?
→ 사람들 사이에 세우는 벽들이 점점 더 두꺼워지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만 맞지 않다고 느껴도 빠르게 단절을 선택하거나, 한 발자국 떨어져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방식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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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번 전시는 ‘마음을 닫지 말자’는 태도에서 출발한다고 들었습니다. 이 생각이 작업의 중심 주제가 되기까지 어떤 개인적 혹은 사회적 경험이 있었나요?
→ 과거에 제게 좋지 않은 버릇이 있었어요. 어떤 말을 하기 전에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는 편이었어요. 그 말을 했을 때 상대의 반응을 미리 예측하고, 최대한 무난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표현만 골라서 말하곤 했습니다. 트러블이 생기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져서, 갈등의 여지를 아예 만들지 않으려 했던 거죠.
그런데 그렇게 지내다 보니 제 속마음을 점점 표현하지 않게 되었고, 어쩌면 제가 말함으로써 충분히 이해받을 수도 있었던 기회들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상대가 저를 이해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함부로 단정하기도 했고요.
스스로를 외부로부터 격리시키는 선택을 하면서, 결국에는 더 외롭고 힘들어졌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에너지를 합리적으로 보존하려 했던 행동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오히려 가장 비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러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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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작가님이 보기에 사람들이 마음을 닫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것은 하나의 방어일까요, 아니면 단절의 시작일까요?
→ 더 이상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리고 어차피 노력해도 잘되지 않을 것이라는 속단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는 방어의 성격이 크다고 봅니다. 괴로운 상태에서 벗어나고,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일 테니까요.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상황을 실제보다 더 최악의 방향으로 과장해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유연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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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번 전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감정이나 이미지가 있다면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가요?
→ 생각만큼 최악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설령 늪 같은 어둠에 빠지더라도 결국 다시 일어날 힘이 모인다는 감정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건 제 삶에서 직접 겪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에요. 약 6년 전, 정말 이대로라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영정사진도 찍고, 유서도 썼어요. 절대 이겨낼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죠. 거의 무너진 상태였고, 바닥에 엎어져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상태 그대로, 정말 꾸역꾸역 버텨냈어요. 그렇게 어떻게든 살아지더라고요. 이후에 겨우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한 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했고, 그 과정이 조금씩 쌓이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그래도 살아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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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상처와 취약성은 종종 사람을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작가님에게 예술은 그런 상태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 제가 내면의 불안과 상처로 힘들었던 시간을 겪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더 밝고 둥근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더 살아가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 어떤 크기의 목소리로 전달되든, 결국에는 희망과 사랑을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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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번 작업을 진행하면서 ‘연결’이나 ‘거리’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었나요?
→ 작업 레퍼런스를 모으는 과정에서 읽었던 원서와 그 번역문이 있는데, 그 문장의 힘을 많이 느꼈습니다.
“Two eyes met in the darkness and fell in love, though they would never see each other’s face.
— 밤을 여행하던 두 눈이 서로에게 사랑에 빠졌다. 서로의 얼굴을 한 번도 바라보지 못한 채.”
이 이야기는 다음 질문과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 같아서, 그 질문에서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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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전시 공간은 관객이 혼자 머무르는 장소이기도 하고 동시에 타인의 경험을 마주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관객은 어떤 방식으로 작품과 관계 맺기를 하게 되나요?
→ 이전에는 직접적으로 얼굴을 마주하거나, 크고 강렬한 힘으로 관객에게 영향을 주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간접적인 연결만으로도 충분히 깊은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또한 숨겨진 메시지가 주는 뜻밖의 울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 겹 너머에서 관객을 만나는 방식을 택하고 싶었습니다. ‘일단 살아보면 좋은 날이 온다’고 직선적으로 말하기보다는, 비선형적으로 움직이는 삶의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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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예술이 사람들 사이의 균열이나 단절을 다루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 최근 예술이 ‘무해함’, ‘관계성’,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 ‘유대’ 같은 키워드에 몰두하면서 다소 진부해지고 흥미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오히려 이런 작업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강한 자극과 도파민을 유발하는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술만큼은 오히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되,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존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중심을 지킬 수 있는 ‘0의 지점’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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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스스로에게 계속 던졌던 질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행복함을 나 자신에게 조금 더 허락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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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지금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번 전시는 어떤 방식으로 말을 건네길 바라시나요?
→ 우리는 정말 예상치 못한 순간에, 문득 ‘괜찮아질 수도 있겠다’는 감각을 느끼게 되곤 합니다. 그것은 거대한 각성의 순간이라기보다는, 아주 작은 희망들이 한 겹 한 겹 쌓여 만들어지는 변화라고 생각해요.
제 전시가 그런 희망의 조각 중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다시 일어설 때, 그 바닥을 지탱해주는 작은 조각으로 남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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