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더블빌_맥그리거&테틀리 1부 감상

 2026년 더블빌 1부 감상


Wayne McGregor의 <인프라>


안무가 도시에서 차갑고 느릿하게 기어가는 뱀을 연상케했다. 금방 맺어지고 또 지워져가는 관계들은 우리 내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이러니하게도 극을 보며 내가 사람을 정리해나가는 방식이 떠올랐다. 나는 어지간하면 사람을 쉽게 내치지 않는다. 워낙 소수의 사람하고만 깊게 지내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께할수록 불편함이 강해지고, 더 이상 갈등을 견딜 수 없어지며, 나 자신을 지키기 힘들다는 느낌이 들 때 관계를 끊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관계를 정리하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단번에 마음까지 잘라낼 수 있겠나.


게다가 나는 쿨한 스타일도 아니라서 “우리가 이제 함께할 수는 없겠지만, 여전히 내게 소중한 존재야. 앞으로도 잘 지내길 바랄게.”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못 된다.


그냥 그 사람을 내 안에서 지워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덜 힘들다.


그래서 나는 내 안에서 그 사람의 장례식을 치른다. 종이에 그 사람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고, 그 사람과 내 인연이 완전히 끊어지는 상상을 하며 종이를 태운다.


그렇게 그 사람은 죽는다. 내 안에서 존재를 소멸시킨다. 안녕.


이게 내 이별 방식이다.


그 후에는 어쩌다가 그 사람의 사진이나 영상을 보며 잠깐 마음이 흔들리다가도, “아, 죽은 사람이었지. 그렇게 젊을 때 죽었다니 안타깝네.”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관계는 Julian Opie의 저 영상 속 걸어가는 사람들처럼 흘려보내기도 한다. 극의 안무처럼 어쩌면 멀다면 먼 사이로, 어떤 순간에는 엉키고 다시 멀어지는 사이가 될 수도 있을 텐데. 그러다 보면 다시 좋아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잖아.


그런데 말이야. 단절은 감정의 층위를 절단하는 걸까. 외과 수술 같은 걸까. 단절, 절단.


저 군무처럼 느릿하게 움직이며 슬금슬금 바늘로 꿰어진다면, 결국 봉합도 되는 걸까.


내 방식, 당신 방식, 우리 방식.

도시 속의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