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소년들을 보며 든 생각 先日、少年たちを見て感じたこと

9월 초, 친구와 길을 걷고 있었다. 저쪽에서 중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 두 명이 다가왔다. 둘은 농구 흉내를 내며 크게 웃고 있었다. 우리와 스치던 순간, 그중 한 명이 갑자기 ‘Creampie!’라고 외쳤고, 둘은 서로 키득거리며 지나갔다. 예전에 저 나이대 남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쳐본 적이 있어서,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불러 세워 혼내거나 교사에게 알릴까 고민했지만, 그 자리에서 어떤 대응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괜히 상황이 커져 나만 지칠 것 같아 그냥 지나쳤다. 그렇지만 쉽게 참는 성격이 아니라서 마음속에서는 불쾌함이 가시지 않았다.


예전에는 남학생들이 또래나 젊은 여성에게만 무례하게 군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훨씬 폭이 넓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자리에서 강하게 대응했더라면 상황이 더 커지고, 오히려 내가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교육 환경 속에서도 왜 이런 행동이 주로 남학생들에게서 나타나는지 의문이다. 욕설, 성희롱, 난폭한 태도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예의도 부족하다. 일부만 그렇다고 단정하기에는 사회가 어린 남자들의 무례한 행동을 지나치게 용인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상대가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할 것이라 여겨 행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문제는 단순히 가정교육의 부재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틱톡 같은 짧고 자극적인 미디어 환경, 또래 집단 속 불건전한 남성 문화와 서열 구조는 아이들의 자아를 왜곡시키고 수치심을 무디게 한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에 아무리 가정에서 올바른 가르침을 준다고 해도, 사회 전반의 영향력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 결국 남자아이를 온전한 성인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개별 가정의 노력뿐 아니라 교육 제도와 사회적 환경의 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아들 키우기가 더 어렵다”는 말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구조적 과제일지도 모른다.


9月の初め、友人と道を歩いていた。向こうから中学校の制服を着た男子生徒二人が近づいてきた。二人はバスケットボールの真似をしながら大声で笑っていた。すれ違う瞬間、そのうちの一人が突然「Creampie!」と叫び、二人は顔を見合わせてクスクス笑いながら通り過ぎた。以前、同じ年頃の男子生徒に美術を教えたことがあったので、その言葉の意味は理解していた。


一瞬、呼び止めて叱るか、教師に連絡するか迷った。しかしその場でどう対応しても効果はなく、無駄に状況が大きくなり、自分だけ疲れるだろうと思い、そのまま通り過ぎた。けれども簡単に我慢できる性格ではないので、内心の不快感は消えなかった。


以前は、男子生徒が無礼な態度をとるのは同年代や若い女性に対してだけだと思っていた。しかし実際にはもっと広い範囲に向けられるのだと気づいた。時間が経って振り返ると、もしあの場で強く対応していたら、事態がさらに悪化し、自分が被害を受けていた可能性もあると考えるようになった。


同じ教育環境にいながら、なぜこうした行動が主に男子生徒に見られるのか疑問である。暴言、性的な発言、乱暴な態度を平気で示し、礼儀にも欠けている。ごく一部だけの問題だと断定するには、社会が少年たちの無礼な行動をあまりにも容認している場合が多い。結局、相手が何も反応できないと思い込んで行動することが少なくないのだろう。


この問題は単なる家庭教育の欠如だけでは説明できない。Instagramのリール、YouTubeショート、TikTokのような短く刺激的なメディア環境、同年代の仲間内に存在する不健全な男性文化や序列意識は、子どもたちの自我を歪め、羞恥心を鈍らせる。その結果、社会的に許される行動と許されない行動を区別できなくなる。


だからこそ、家庭でどれほど正しい教育を施しても、社会全体の影響を完全に避けることは難しい。男子を健全な大人へと育てるためには、個々の家庭の努力だけでなく、教育制度や社会的環境の改善も同時に必要である。「男の子を育てる方が大だ」という言葉は、なる愚痴ではなく、構造的な課題を示しているのかもしれな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