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of all

 난 그림을 그리는 일을 평생 갖고 가야 할 직업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내 직업이 내 삶을 불안정하게 만든다면 그건 내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이니까. 최근에는 자꾸 작가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다른 직업들을 생각하곤 했었다. 


나는 내가 평상시에 여러 가지 방향성에 대해 고려하는 만큼 그림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됐다.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못 버티겠는지, 새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붓을 잡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스스로에게 어느 정도 쉬는 시간을 줬으면 이제 다시 원래 루틴대로 돌아와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여전히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작가 생활을 위해 해야 되는 여타 다른 예술 활동도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는데..


아마도 나는 작가 일 자체를 그만두고 싶기보다는, 이 나라에서 하는 예술 활동을 멈추고 싶은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나라의 예술계가 갖고 있는 특수성, 여기서 일을 하면 어쩔 수 없이 부딪히는 유리 장벽, 억울하고 분해서 상황을 개선하고 싶은 생각, 하지만 내가 질 수밖에 없는 싸움, 내가 이기지 못할 것을 아니까 애초에 시도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 내가 버티려고 할수록 나를 더 무너뜨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서 일을 하려면 결국 위에 열거한 일과 맞닥뜨리게 된다. 나는 이게 너무 숨 막혔던 것 같다.


나는 이 나라에서 벗어나야겠다. 내가 지금 서있는 장소를 바꾸면 지금처럼 숨막히진 않을 거 같다. 그러니까 당장 그림을 그만둔다고 결정하지 말고 이런저런 변화를 시도해 봐야겠다. 지금 할 수 있는 적당한 조치를 취해봐야지. 그리고 작업에 있어서도 내 주의를 전환시킬 수 있는 것들은 다 시도해 봐야겠다. 생각해 봤던 영상 작업도 해보고 퍼포먼스, 무대 미술, 화보 디렉팅 등등… 해볼 수 있는 것들은 많다. 지금 이 시간을 유예기간이라고 생각하겠다.


+어쨋거나 그림을 꾸준히 그리긴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일정 기간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기량 유지가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