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ends
몇년 전 참석했던 전시 오프닝 파티에서 누가 내 음료에 약을 탔었다. 나중에 알게 된 범행 동기가 터무니 없었다. 내가 재수없고 오만해 보여서 꺾어주고 싶었다나. 당시 나는 상황이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되서 내게서 잘못된 이유를 찾으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경험을 한 여성 작가가 꽤 많다는 것을 알았다. 말도 안되는 생각으로 사람의 존엄성을 무너트리는 일이 많다는 것이 슬펐다. 젊고 재능있는 여성은 쉽게 표적이 된다. 놀랍게도 내가 이뤄낸 성과가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자리를 약탈했다는 감상을 준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강탈한 여성에게 고통을 줘야겠다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여성 혐오 범죄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나 한국에서는 당장 나에게도 가까운 누군가에게도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두번 다시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작가 활동을 최소화했었다.
그리고 10년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작품 프리젠테이션을 했을 때 질문을 하는 사람이 빔 프로젝터 화면에 있는 작품의 신체 부위를 클로즈업하고 작품과 관련없는 질문을 했었다. 내가 화제를 돌리려고 해도 마치 내 멘탈을 흔드는게 목적인 것처럼 집요하게 질문했었다. 나는 고작 서있는 정도가 최선이었지만 계속해서 면접을 이어가야 했기 때문에 주먹에 힘을 꽉 주고 포커페이스로 응답했다. 그저 이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은 생각과 동시에 앞서 있었던 다른 작가들도 신체를 그렸는데 왜 내게만 이런 질문을 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 자리에 있던 1차 심사 통과 작가중 여성 작가는 나뿐이었다. 아닐거라고 생각을 해도 명징하게 드러난 사실이 있었고, 수치스럽기보다는 화가 났었다.
이 일들은 내 창작 활동에 제약을 줬다. 내가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이게 또 어떤 문제를 일으킬까 걱정되고 두려웠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나 신경쓰였다.
이토록 폭력적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의문이었다. 내 태도가 자꾸만 방어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사람이 싫어졌다. 나를 배신하지 않을, 완전히 내 편이다 싶은 극소수하고만 연락을 하고 굴 안으로 숨어들었다. 피곤했다. 더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신경쓰면서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그 때 나는 많이 외로웠었다.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으면서도 내가 나 스스로를 존중하기 어려웠다. 내 존재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의 무게에 짓눌렸었다. 난 그 시간동안 비합리적인 신념이 생겼었다. 내가 맡은 모든 일에서 실패해서는 안되고 늘 완벽하게 일을 해내야 한다고 느꼈었다. 세상의 일이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예측불가능한 상황을 못견뎠다. 작업을 통해 반드시 사람들을 만족시켜줘야 할 것 같았고 그 과정에 있어서 나를 희생시키는 것은 큰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내게 성공과 발전에 대한 강박이 생겨가는 것을 알면서도 내 공허함을 채울 수 있다면 괜찮을 거라고 여겼다.
어쩌면 이것은 성장 스토리 중 한 부분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나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과정이었다. 스스로에게 가혹하게 대하는 것을 허용했었고 점차 타인도 그런 내게 익숙해졌었다. 사람들이 나를 나 자체로 보기보다는 내게 어떤 것을 덧씌워서 봤다. 어쩔 수 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내 자원을 이용하거나 빼앗아가려고 해도 이 부당한 대우에 제대로 저항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가장 내게 부당하게 대했던 것은 나였던 것 같다.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감각을 잃어버리면서 내 속마음을 계속 무시하고 있었으니까.
누군가가 내게 ‘윤아야 이거 할 수 있지?’ 라고 물어보면 내 솔직한 마음대로 ‘안하고 싶다’는 말을 못하고 계속 무리한 요구에 응해왔다. 내 진짜 속마음이 이젠 쉬고 싶다고 애원을 해도 더 중요한게 있으니까 난 그렇게 못해, 조금만 참자라고 하면서 외부를 위한 선택을 했었다. 이게 내가 어떤 결정의 순간이 올 때마다 자꾸 무리한 선택을 하는 결정적인 실패 패턴을 만들었다. 반복되고 또 반복되면서 익숙해졌지만. 참는게 너무 익숙해지면서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잊고 살았었다.
그리고 2,3년 전부터 슬슬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나 스스로가 만든 억압과 굴레를 인식해갔다. 내 삶을 낫게 만들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것을 실천하는 것이 힘들었다. 변하고 싶지만 그래도 일단은 일에 집중하는게 맞다고 여기는 생각과 부딪혔었다. 기나긴 시간동안 쌓인 ‘나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고, 일에 집중하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무기력함’이 관성으로 작용했다. 익숙한 과거의 습관에 그대로 머물고 싶은 반면 이제 진짜 변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과거처럼 살지, 새로운 내가 될지,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한 갈림길에 서있었다.
그리고 나는 결정을 했다. 일단 나부터 내 편이 되주기로 했다. 나는 과거를 뒤로하고, 내 내면을 마주보고 진짜로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로 했다.
지금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조금씩 시도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상태’로 전환하고 있다. 하면 안될 것 같았던 행동을 경험해보면서 무력감은 줄어들고 진짜 마음이 되살아난다. 나 자신의 선택을 지지하고 포용하면서 새로운 자기효능감을 느끼고 있다.
솔직히 글을 적으면서 조금 무서웠다. 과연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동시대를 살고 있고, 70억이 넘는 인류중 서로에게 같은 마음을 갖게 된 것이 기적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감사한 일인데 나는 계속 욕심이 생겨난다. 과연 당신은 내 어떤 모습을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들고, 내가 예전과 같은 태도로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나를 계속 좋아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나 자체보다 그림을 그리는 나를 더 좋아해서 이 글을 읽고 내게 실망한다면.. 음.. 부응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래도 인간적인 윤아를 더 좋아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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