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e Bye 2023
한 해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으니 2023년의 소감을 써봐야지.
*아무래도 나는 올해 사춘기를 겪은 것 같다.
내 마음에 사춘기의 열병이 불붙은 듯 일렁거렸다. 사실 사춘기는 15세~20세인 청소년기에 오는 것인데 그 나이대를 훌쩍 지난 나에게 찾아온 까닭은.. 아마도 지금쯤 사춘기를 겪을만한 정서적인 여유가 조금 생겼고, 다시금 자아를 확립하는 순간이 와서 그런 것 같다. 작년까지 내 모든 방향이 성취를 향했었고, 커리어적인 욕심도 많아서 스스로를 거의 방치했었다.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은 적도 없었고..
그리고 올해부터 나 자신을 돌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처음에는 스스로에게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단단해지는 시간을 주는게 너무 어려웠다. 나는 처음부터 세상 밖으로 던져져서 살았는데 왜 이걸 굳이 해야 하지라는 의문도 들었고 이러다 보면 정말 치유가 되는 건가 하는 의문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던 결핍과 상실을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감당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차라리 눈을 감고 회피하고 싶었지만 나는 올해부터 무엇이든 회피하지 않기로 결심했으니까 나름의 규칙을 지켰다.
여하튼 내 마음속에 있던 자아를 숨 쉬게 했고 잃어버린 사춘기를 이제서야 겪었다. 나라는 존재를 파악해가면서 내 사소한 취향, 마음을 알게 되었고 그 과정 하나하나가 새로웠다. 그리고 내 진짜 마음을 자각하는 것은 내 안의 목소리에 정성껏 귀 기울 일 때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짊어진 짐이라든지 해결해야 할 일들, 나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말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한번 자각하기 시작하니까 온통 마음에 휩쓸렸다. 하루는 너무 우울했고, 하루는 너무 좋았고 참 변덕스러웠다. 봄의 시간에 관통당한 것 같았다. 사춘기의 여정은 원래 감정 기복이 따르는 걸까? 일에 대한 부담과 나를 지우고 싶어서 방황하는 하루하루 사이에도 내 안의 목소리가 계속 누군가를 찾고 외치고 있었다. 어떻게 이 정도까지 이끌릴 수 있을까 반문하며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지 궁금했는데 점점 더 마음이 자라났다. 이 모든 일들이 비논리적이다, 논리적이다 나누는 것을 그만뒀다. 어느새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쩌면 이 마음으로 인해 내가 되살아난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여전히 설렌다. 너무 소중하고 예뻐서 계속해서 키워나가고 싶다. 올해 갑작스럽게 맞이한 나의 소녀 시절은 설렘과 함께 성숙해지고 난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다.
*나는 인간 관계에서의 밀당이 싫은 것 같다. 누군가는 친구 관계에서도 밀고 당기기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난 밀면 그대로 밀려나가는 듯. 특히 눈에 뻔히 보히는 의도를 둔 밀당이 싫다. 상념이 많은 나는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한 것이 생기면 생각이 필요이상 많아져서 두부 멘탈로 변한다. 그냥 내 좁은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 해도 에너지가 쓰이는데 무엇때문에 마음을 시험하는 언행을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비효율적이고 피곤한 일이다. 난 내 사람에게는 그저 잘해주고 싶던데.. 여튼 내가 안좋아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하고 싶지도 않다. 안그래도 복잡한 세상인데 신뢰 관계 안에서는 편하게 삽시다.
*스스로 짐을 가져갈 필요도, 나는 이래야 한다고 과도한 역할을 부여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정한 이상향이 되기 위해서 연기할 필요 없이 나자신에게 충실하면 된다. 문제가 일어날 때 너무 내 탓을 할 필요도, 자기혐오에 빠져있지 않아도 된다. 현재를 살면 땅 위에 온전히 서게 된다.
*올해 총 6kg이 증발했다. 다이어트 한 것도 아니었는데 왜죠.. 필요 이상 가벼워진 나는 체력적으로 힘에 부쳐서 가끔은 스케줄을 소화하기 힘들었고, 가끔은 어이없게 쓰러지곤 했다. 의사의 권고에 따라 증량하고 싶은데 쉽지 않군.. 1~2kg 늘다가도 금방 장기에 염증이 나서 체중이 줄어든다ㅜㅜ 미주신경성 실신이라든지 밤에 갑자기 열나는 일이 줄어들면 좋겠다. 그리고 건강뿐만 아니라 신체 정렬을 할때도 글래머가 예뻐보이던데.. 아쉽군…..
*몸에 힘을 빼고 파도를 타는 법을 익히고 있다. 자연스럽게 흐름을 받아들이고 나 또한 물결이 돼서 나아가는 방법.
*어쨋거나 인간은 커뮤니티에서 사는 동물인 만큼 각자의 무게를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은 대화에서 이루어진다. 간접적인 소통으로도 교감이 이루어지고 상처를 어루만지게 되는데 직접적인 소통은 어떤 느낌일까?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헤아려준다는 것은 너무 너무 좋은 일이다. 나도 더 다정하게 대하고 싶다.
*MBTI 검사를 하면 2-3년 전에는 ENTJ, INTJ가 번갈아가면서 나왔는데 최근에는 INFJ가 나온다. 음 원래 나는 내성적인 사람인데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주제에 불의는 못참아서) 앞으로 나갔던 순간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지나치게 나서는거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ㅜㅜㅋ 그런데 또 불합리한 상황을 본다면 나설 것 같기도.. 혹시 내가 영웅 심리를 갖고있나?
아 그리고 확실히 변한건..! 내게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누군가가 해결해야 하는 방향성을 제시해주기보다는 위로해주길 바란다. 어차피 갈등 상황 안에서 해결할 방법을 찾아서 입력->실행할 사람은 나고, 책임질 사람도 나니까 이왕이면 내가 더 잘 견딜 수 있도록 공감과 다정함을. (물론 MBTI가 나 자체인 것은 아니다 INFJ 특징이 이렇다고 적혀있는데 나는 안그런 경우도 꽤 있음)
*타고난 성향은 바꿀 수 없으니 생각이 너무 꼬리에 꼬리를 물지않게 알아서 잘 관리하고 싶다. 어차피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사고에 한계가 있어서(보통 자신의 경험에서만 근거해서 사고하기 때문에 생각의 틀이 정해져 있다. 아무리 메타적으로 사고할려고 해도 or ‘내가 A라면’의 다중조건으로 사고하려해도 결국 그 생각을 하는 것은 나여서 혼자서 생각할 수록 사고가 고립된다) 나 자신에게 긴 시간을 줘봤자 진짜 생산적인 생각은 3일 안에 다 나온다. 아 3일도 너무 길다. 나는 3시간이면 A부터 Z까지 추론을 하고 그 안에서 가장 긍정적으로 유의미한 결과 도출이 가능한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한참 각성상태로 살았을 때는 초단위도 가능했지만 뭐 이젠 그렇게 빨리 빨리 골라야 생존할 수 있는 삶은 아니기 때문에.. 여튼 고민하는 시간에 적당한 제한을 두는게 아이러니하게도 더 시야를 확장할 수 있는 방법같다.
*나는 내게 유전자를 전수한 사람이 너무 싫어서 내 유전자까지도 싫었다. 그리고 그 유전자가 온몸을 타고 흐르는 나 자체도 싫었다. 비교적 최근까지 나는 아이를 만들지 않겠다고 정했었다. 반드시 대를 끊어야 하겠다는 결심으로.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내 이런 생각을 친구에게 말하자 친구가 곧바로 ‘그래서 그 유전자를 갖고 있는 윤아 너는 나쁜 사람이야? 네가 그 사람들처럼 악한 행동을 한 적이 있어? 너는 그 사람들에게 DNA를 물려받았어도 그 사람들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잖아.’라고 말했다. 머리가 띵했다. 나도 모르게 내게 속박과 저주를 걸고 있었나 보다. 혼자 고립돼서 생각하다 보면 이런 식으로 사고가 쏠리나봐. 긴 시간 끌어안고 살았던 고통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아주 간단하게 해소되었다. 아.. 내가 그들처럼 나쁜 부모가 될까봐 무서웠는데 이것 역시 나는 그들과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이 해결해 줬다. 아주 만약에 미래에 내가 엄마가 된다면, 사랑과 인내로 아이를 키우는 게 가능하겠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 삶에서 배운 지혜로 아이에게 도움을 주는 것, 언젠가 자립할 수 있는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 정서적 유대감을 통해 건강한 애착관계를 심어주는 것, 자존감을 길러주는 것. 모두 가능할 것 같다. 여전히 인생에 출산과 육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냥 가능성을 열어두기로 했다.
*예술-내 작품보다 삶을 잘 살아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작업을 하는 게 덜 힘들어졌다. 그전에는 그림을 그리는 게 하나도 즐겁지 않고 그저 내가 견뎌야 하는 노동이라고 느꼈었다. 아이러니하다. 결국 삶을 사는 것은 나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나이기 때문에 그런 걸까? 내가 그림을 보는 시선이 한결 더 풍요로워진 것 같다. 타인도 내 작업에 더 공감하는 것 같다. 완전 선순환..!
*그리는 시간을 정해두고 그리니까 시간을 오버해서 그리지 않기 때문에 손목이 덜 아프게 되었다. 이전에는 손이 아프니까 손을 쓰는 다른 일이 부담스러워서 시도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여러 용도로 손을 사용했다. 대표적으로 요리인데 토마토 스프? 굴라쉬 만드는 것은 자신있다. 나는 손으로 하는 건 다 잘하는 것 같다.. 아마도… 앗 아닐 수도… 어쩌면 파격적으로 못하는게 있을 수도ㅋㅋㅋ
*움 내년에는 밤새는 일 없게 시간을 잘 분배하고 싶다. 이제 진짜 밤새는 건 못하겠다ㅋㅋ 밤새운 다음날은 에너지가 팍 줄어들고 헤롱헤롱해진다. 심하면 침대에서 벗어나질 못하겠다. 내 엔진의 효율이 저하되는 건 앞으로 안할 것이다. 근데 모르지 뭐 바쁘면 어쩔 수 없음…
*’블랙 쉘과 원의 모험’은 내 기존 작품의 프리퀄 시리즈다. 시간대는 쉘의 과거에 속한다. 내년에 주로 이 이야기를 그릴 것 같은데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구축한 세계관을 쭉 연재하다보면 2028년쯤에는 완결낼 것 같다. 아주 느긋하게 잡은 숫자라서 어쩌면 2028년 전에 완결낼 수도 있고, 혹은 해야 할 다른 업무가 생기면 더 늦춰질 수도 있음.
=올해 내 사고방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군. 앞으로 나는 어떻게 더 바뀔까?
=올해 전체를 점수를 매겨봤는데 마이너스가 있긴했지만 이를 충분히 상회하는 플러스가 있어서 토탈 +3점 정도 줄 수 있는 2023년이었다. 0점 이상이라니 멋지다. 이런 해는 처음인데…? 굿
=부디 내년에는 더 즐거운 순간이 많기를. 난 즐길 준비가 된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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