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6일

 조금 허심탄회하게 적어볼까. 여성의 유리천장, 계급의 유리천장, 인종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노력했던 것도 사실이고 개인의 목적을 위해 모든 바쳐서 살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솔직하게 뭐가 먼저인가를 따진다면 후자가 압도적으로 강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리천장을 넘어보려는 마음의 무게가 덜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차별을 당했을 내가 완벽하게 하면 되는 일이고, 그것도 아주 압도적으로 해낸다면 어떤 잣대조차 비껴갈거라고 다짐하고 다시 달려나가는 아마도 유별난 저항성에서 출발하는 같다. 상식적으로 옳고 그르다를 따졌을 납득할 없는 일을 보면 그게 그런지 원인을 분석하여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타고난 기질이 그렇다. 도저히 그냥은 넘어간다. 포기를 못하는 기질이 한번 정했으면 무조건 그대로 그렇게 하기로 정했으니까를 만든 같다. 또한 나는 환경이 이래서 우리는 못해 어쩔 없어라는 패배주의를 제일 싫어한다. 그래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자력으로 성공을 하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하다. 나도 너무 안다. 필요 이상 실감을 해서 무력감도 많이 느낀다. 세상 반대편 -특히 백인 남성들의 리그에서 아시안 여자의 타이틀을 원치 않아 어떻게든 막고 싶어 하는 뚜렷한 증거와 대면했을 , 내가 넘어야 벽이 까마득해서 정말 죽고 싶더군. 하지만 그래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 만약 내가 벽을 넘을 수만 있다면 조금은 정당하고 투명한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할 있지 않을까 싶어서. 지금의 나는 고작 윤아지만 시간이 흘러 사회의 선순환에 이바지할 있다면 또한 소명 하나라고 여겼다. 나는 그런 자질이 있는 같았다. 어쩌면 스스로를 과대평가해서 그런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남보다 자신에게 엄격한 기준을 대는 편이고 나름은 결과로 증명했으니 객관성이 그리 부재하진 않은 같다. 
그런데 내가 뭔가를 해낼 있는 사람인 자체는 맞는데.. 실은 내가 살아왔던 삶의 강도라든지 작업하는 태도, 방식이 어떤 식으로든 미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처럼 노력하면 꿈을 이뤄가는 거라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내가 걸어왔던 길을 다른 이도 그렇게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건 스스로를 대단히 특별하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질식할 같은 압박감과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하나면 족해서다. 매번 좌절하고 눈물을 삼키고 다시 일어나는 반복하면서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버리는 삶을 사는 사람을 강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약하게 만든다. 시간이 흐르며 나무의 겉껍질은 아주 단단해지지만 속은 비워지는 거랑 비슷한 같다. 꿈을 비롯한 모든 것을 위해서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뛰었지만 인간적인 삶을 포기하며 생기는 공허함과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줄 것이라는 것에 대해 포기했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면 좋겠다. 너무너무 아쉬워. 내가 앞선 걸음이 되어 누군가의 의지에 보탬이 되는 아니라 결국 작가 그래서 끝났지라는 결론이 되어버리면 그게 한계를 긋는 일이니까.


 바다에 가고 싶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파도에 맥없이 휩쓸리고 싶다. 파도를 품고 싶다. 파도가 나의 일이라면 나는 바다가 열리는 것을 기다려야 하겠지. 밤의 장막을 헤치고..  


 과거 사진을 정리해서 쭉 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작업에서 모델로 등장한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인체를 아는 편이기도 하고 몸을 사용해서 표현하는 자체에 재밌기도 했다. 좋은 기회를 지인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컨셉이나 의상, 헤어, 메이크업을 정하는 것도 흥미로웠고, 신체를 대상의 인터페이스 삼아 스토리텔링을 하고 신체언어로 전달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다 보니 차츰 무용하는 신체, 미술관에 들어온 움직이는 신체에 관심이 갔고 자연히 시대를 사유하는 몸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여기서 제한적 관념을 전복시키고 질서로 무질서의 공존으로 가려면? 양식의 해방과 해체도 필요 없이 제로의 세계로 접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는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