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1
불을 그리고 있었어요. 만약 이 그림이 드로잉이 아니라 페인팅이라서 무슨 색으로 칠할 거냐고 물어본다면 이건 파란색인데 동시에 분홍빛이기도 한 불이라고 대답할 거예요.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은근히 겹치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먼저 더 잔뜩 말해둘까, 어느 시점에 누가 이런 말을 했는지 찾아보면 재밌겠다 싶었지요. 먼저 나부터 적어두자면 나는 12월 21일에 태어났어요. 나는 밤이 가장 긴 날에 태어났지요. 그래서일까 나는 광 민감증이에요.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장시간 햇빛에 노출되면 피부가 부어올라요. 그래도 햇빛에 나뭇잎이 빛나서 은색으로 찰랑이는 순간을 좋아해요. 그럴 때 귀를 기울이면 나무에게서 바닷소리가 나요. 정말이야 나뭇잎이 한꺼번에 바람에 움직이는 소리는 파도 소리와 비슷해요. 둘 다 기원은 자연이니까 닮을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내 장래희망은 무술가인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고 무술 자체에도 관심이 많거든요. 지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고요. 소림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했었습니다. 이런 미래가 제게 허락될지 모르겠지만, 결국 살아남는다면 나이 들었을 때 적당한 소도시에서 은둔 고수로 살면 멋지겠다고 생각했었지요. 아침에 일어나서 태극 기공 18식을 하고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할머니!
나는 푸른색을 좋아해요. 라일락색도 좋아하고요. 영어 이름을 라일라로 할까 하는 고민도 했었지요. 내 작가명 Ayuna 와 본명이 다르다는 사실도 좋아합니다. 친한 사람들은 저를 본명으로 부르는데 그 순간 내가 속해 있는 사적인 세계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작가명과 본명에 꽤 차이가 있을 것만 같은데 의외로 본명도 윤아에요. 여권에 들어가는 영어 철자가 다를 뿐이지요. 그뿐인데도 느낌이 꽤 달라요. 아.. 성도 다르네요.
의외인 점을 하나 더 말해볼까요. 저는 디자인이 잘 나온 귀여운 아이템을 좋아합니다. 라인 스티커도 오랫동안 심사숙고해서 토끼 캐릭터 중 하나를 구매했습니다. 제가 깔끔한 디자인을 선호하기도 하고 작품 속 페르소나들이 주로 무늬가 없는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제 소지품을 보일 때 어쩐지 놀랐다는 반응이 있습니다. 취향의 스펙트럼이 점점 더 넓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솔직한 것을 좋아합니다.
요즘 시대에는 감성적인 말을 어리고 유치하고 만화 같다고 비난하는 경향이 있어요. 솔직한 마음을 부끄럽고 이상한 것이라고 매도하는 곳에서는 진정한 마음을 꺼낼 수 없어요. 진짜 감정을 꺼냈다가 비난받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앞서니까요. 우스운 사람이 되기 싫어지고요.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아요. 그러니까 나에게 진심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온전히 받아들일게요.
전할 수 없는 이야기들은 어딘가에 잠겨서 고요히 울리고 있습니다. 가령 ’나를 믿어줘, 내가 조금 더 버틸 수 있게 힘을 실어줘, 네 마음을 꺼내서 보여줘, 나를 포기하지 말아줘.‘, ‘내 마음도 네 마음도 자라나 싱그러운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어.’, ‘내가 전하는 메시지들을 소중히 여겨줬으면 좋겠어 나도 그렇게 할게.’, '너를 지켜줄게 내가 너를 믿어줄게 내가 너를 구해줄게.'
어제 하드를 정리하다가 작년 태극권 영상을 찾았어요. 운동을 하다 보면 힘드니까 내가 왜 사서 고생을 하나 싶은 순간이 있었어요. 그럴 때는 언젠가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배우는 거라고 생각하면 나름 버틸 만해집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다시 재밌어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누가 누구를 지켜~ 내가 호신술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 정도까지만 해도 많이 배운 거겠지요.
음.. 같은 체급과의 대련도 좋지만 제가 170~180cm의 체급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만큼 운동을 한다면 어떨까요.
요새 수련을 다시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운동을 하다 보면 근육의 수축, 팽창과 함께 머릿속이 고요해지는 순간이 오거든요. 지금은 그게 필요한 걸 수도 있겠어요. 산에서 뛰는 정도로는 부족한가 봐요.
저를 버티게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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