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Ends

지현아, 또 3월이 온다. 3월은 네 생일이고 8월은 네 기일이다. 3월, 8월에는 네 생각을 많이 난다.

3월에는 주로 너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이십 대였지. 우리는 취향도 사고방식도 많이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더 나은 현실을 추구하는 여대생이라는 것만은 같았다. 누군가가 우리들에게 한참 좋은 나이인데 미팅 이런 거 안 하냐고 물어보면 우리가 지금 그럴 시간이 어딨냐고 오로지 혁명뿐이라고 대답했었어. 맞아. 그 당시 우리에게 연애 이런 것은 대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 우리는 시위를 했었고 때론 선언문을 읽었고 때론 진압봉으로 두드려 맞았었다. 혹은 살수차의 물대포에 맞아서 비틀거린 친구를 업고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우리가 하는 운동이 현실을 더 낫게 만들 거라는 생각과 우리가 지금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그때 그 현실을 버티게 해줬었다. 3월이 되면 우리는 절대 지지 않는다고 다짐했던 그 마음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8월이 되면 네 장례식에 가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니 앉아있었던 내가 떠오른다. 네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결정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너에게 그 사건들이 있고 나서 한동안 너를 데리고 상담 센터를 다녔었다. 아무것도 못 먹던 네가 다시 식사를 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에는 밤에 잠도 자는 것 같더라. 그래서 나는 네가 마음의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나는 줄 알았다. 그때 네가 죽음을 결정지을 수 있는 마지막 힘을 모으고 있는 줄은 몰랐다. 너를 원망하기도 했었다. 죽지 말고 더 살아보지. 인생은 누구에게나 오르막도 내리막도 있는 건데. 내리막인 줄 알았더니 오르막이었고 오르막인 줄 알았더니 내리막인 경우도 있는 게 삶인데.. 나도 살고 있는데.. 살다보면 나은 순간이 오고 오로지 시간이 약일 때가 많은데 왜 벌써 가버렸을까 싶어서 네가 미웠다. 그러다가도 네게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면.. 그래. 네가 버티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가해자들이 죄를 지었으니까 벌을 줘야 해서 네 피해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 너무나 잔인했다. 경찰에게 그 일들을 구체적으로 계속 설명해야 했었고, 연이어 항소를 해야 했었다. 이 모든 순간들이 너를 무너트렸었지. 네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면서도 네 마지막 선택을 존중하기 어려웠다. 8월에는 이 지옥같이 뜨거웠던 순간들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래서 난 여름이 싫다. 여름에는 항상 힘든 사건이 일어나고 난 흔들린다.


지현아 네가 떠난 후로, 사실 나는 그때 죽어야 했던 게 나여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어. 나대신 네가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네가 지금 살아있다면 나보다 훨씬 잘 살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 나 혼자 살아남은 게 힘들고 외로웠어. 이런 내가 위태로워 보였는지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집에 와서 나랑 같이 시간을 보냈어. 하루는 지원이가 왔었고 하루는 은지가 와서 나를 돌봐줬었어. 내가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하게 영화를 연달아서 보기도 했었고 잠시도 날 가만히 두지 않았어. 내가 진짜 힘들 때 나를 혼자 두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알아서 그랬던 것 같아. 덕분에 살았었어. 그런데도 죽음에는 전염성이 있는지 나는 점차 내게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었어. 남들에겐 인생에서 한번 일어나기도 힘든 사건들이, 내 삶에서 연달아 불행이 일어나는 게 꼭 내 문제 같았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이 계속 내 귀에서 울렸어. 그럴 때는 왜 꼭 안 좋은 뉴스들만 더 눈에 들어올까. 비슷한 사건들이 보이면 울분이 가득 차서 화가 나고 괴롭고 슬펐어.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이제 도저히 못 버티겠다 싶어서 영정사진을 찍었다. 그때는 정말 마지막이다 싶어서 영정사진을 찍었던 건데 최근에 그 사진을 보니까 피식 웃음이 나오더라. 사진 속에서 흰옷을 입고 웃고 있는 내가 우습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면 정말 나아지는구나를 실감했어.


그당시 난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해서 겁이 없었어. 보통은 시도하다가 아파서 중간에 멈춘다던데 난 그러지도 않아서 끝까지 갔었다. 그런데 산 낭떠러지에서 떨어졌었는데도 다음날이면 눈을 떴고, 한강에서 투신했었는데도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건져줬었어. 2016년 2월쯤이던가.. 그러면서 아직은 내가 죽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다고 삶에 희망을 갖고 적극적으로 살아가지도 못했어. 일단은 내가 미술을 하고 있으니까 한 번쯤 이루고 싶은 게 있었고 그때까지만 살아보자고 생각했지만 살아가는데 내심 괴리감을 품고 있었어. 삶과 죽음 두 곳에 발을 걸쳤으니까. 계속해서 칼날 위에 서있는 기분이었어. 


그리고 신경 재활을 하면서 물리적인 아픔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어. 아이러니하게도 통증이 내가 현실에서 살아있다는 감각을 주기 시작했어. 아픈 것을 뚜렷하게 느끼기 시작하니까 더 이상 내 몸을 아프게 하기가 싫더라. 웃기지? 하하 


지현아, 나는 더 이상 죽음을 염두에 둔 삶을 살지 않으려고 해. 사실 내 마음이 나아진지는 꽤 시간이 지났어. 어느 순간을 계기로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네가 바라는 것은 내가 행복하게 사는 거겠지. 네 유서처럼. 너는 내가 하는 선택들이 날 아프게 할까 봐 미리 겁나서 움츠려들지 말고 씩씩하게 용기를 내서 결국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란다고 적었었지. 처음에는 유서에 그런 말을 적는 네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어. 어떻게 사람을 두고 떠나가면서 이런 말을 할까 싶었지만.. 그래 이제는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 죽지 못해서 겨우겨우 사는 거 말고, 이 정도까지 이뤘으면 충분히 도전해봤으니까 이제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거 말고. 

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충분히 즐기면서 살 거야. 행복하게 살 거야. 난 소중한 것은 아주 귀하게 여길 거야. 한껏 껴안고 보살펴줄 거야. 그리고 내 순수성을 귀하게 여겨줄 사람과 행복하게 살거야. 사랑하는 사람이랑 매일 하루에 밥 두끼정도 같이 먹고, 매일 밤 잘자라고 말하고 같이 잠드는 정도면 충분해. 내가 진짜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면서 살 거야. 


내가 이 글을 왜 적냐면 너를 내 가슴속에 묻어두고 기억하고 싶어서다.

좋은 곳에서 태어나라 지현아. 이미 태어났다면 부모가 좋은 사람이길, 그리고  이상 아프지 말고 평범하고 무난하게 살아가길 빈다. 네가 태어난 환경이 버텨내야만 삶을 살아갈 있는 환경이 아니길. 많은 사랑을 주고받는 삶이길. 마침내 평온하게 살아가길.